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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일지

[Day 3] 2025 유럽 종교개혁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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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지혜
조회 273회 작성일 25-11-0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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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시고 독일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은 4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독일에 가야하고 오후에 예약해놓은 비텐베르크의 성교회와 루터 박물관에 가야하기 때문에 버스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의 성구암송입니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분별한다는 것은 그냥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훈련과 비교를 통해 분별할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매일의 훈련과 말씀에 비추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으로 그의 나라를 구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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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 후서 3: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이 사람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 버리운 자들이라


질서를 대적하는 것이 마음이 부패한 것이요 믿음에 관하여 버리운 자라는 말씀이 엄중하게 다가옵니다. 가정, 교회, 나라 의 질서 가운데 거함으로 리더십을 세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릴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시간이 넘는 버스 라이드 동안 담임목사님의 교회사 특강이 이어집니다. 형성기 -> 혼란기 -> 전성기 -> 쇠퇴기. 예수님이 떠나시고 사도, 속사도, 교부를 지나 로마의 역사 가운데 핍박과 국교로 지정되기 까지의 시간들, 그리고 핍박이 끝나자 오히려 타락하기 시작한 로마카톨릭의 모습 가운데 1517년 종교개혁이 시작 될수 밖에 없던 배경에 대해 배웠습니다. "옳은 것을 알면 옳은 것을 사랑하라" 특강 내용은 제가 자세히 담아보려고 했으나 4시간에 걸쳐 선교일지를 거의 다 썼다가 날리고 다시 쓰는 바람에 내년 봄 성지순례팀을 위해 남겨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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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보는 독일의 모습은 체코와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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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묘지가 있고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테제의 문"이 있는 성교회에 도착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조용한 대학 도시 비텐베르크 성교회(Wittenberg Schloss Kirche)에 루터는 당시에는 나무였던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달았습니다. 그당시에는 자신이 다른 신학자들이 토론할 내용을 그렇게 다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특별히 11/1일은 카톨릭에서 All Saints' Day 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면죄부를 사고 교회가 소장하고 있던 유물들에 경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을 알고 있던 루터는 일부러 그날을 골랐고 그렇게 10월31일은 역사적인 종교개혁의 날 Reformation Day가 되었습니다.


루터는 처음에 이 문서를 라틴어로 작성했지만 곧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발달과 그 내용을 지지 하는 사람들에 의해 2주 만에 독일 전역, 한 달 만에 유럽 전체로 급속히 퍼져나가 종교개혁의 불을 지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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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리 안에 구원이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죽음과 지옥의 두려움에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진리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무지를 사용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과 사회적 모든 지위를 버리고 진리를 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성경을 번역하고 교황청에 맞서 진리를 외친 그들의 용기는 참 귀합니다. 결국 종교개혁의 리더들이 행동하도록 깨운것도 말씀이고, 죽음의 두려움 속에 있는 이들을 구할 방법도 진리의 말씀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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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95개조 논조의 내용이 적힌 청동문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성교회 안으로 들어갑니다. 안에는 루터와 그의 동역자인 멜랑히톤이 묻혀있는 묘지가 있습니다. 멜랑히톤은 루터의 동역자로 비텐베르크 대학의 그리스어 교수였는데, 루터가 라틴어/그리스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때 그리스어를 담당하는 듯 아주 중요한 동역자였다고 합니다. 어디를 가나 그 둘의 동상, 초상화, 묘지가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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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루터와 멜랑히톤의 동상이 서있는 구 시청 앞으로 향합니다. 독일의 길은 체코 프라하와 달리 소박하고 심플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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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동역자였던 멜랑히톤의 집입니다마틴 루터의 가장 중요한 동역자이자, 종교개혁의 신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핵심 인물입니다. 그는 독일의 교사(Praeceptor Germaniae)라고 불릴 만큼 개신교의 신학적, 교육적 기반을 다지는 데 공헌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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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시청앞에 서있는 루터의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이제 루터가 35년간 중점적으로 활동했던 루터 하우스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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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원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건물로 지어진, 루터가 박사 학위를 받고 1512년 비텐베르크대학 교수가 된 후에도 수도사로 머물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루터는 고생과 선행,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의에 이를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다 '이신칭의'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 머무르며 로마카톨릭을 바로잡고자 연구와 묵상에 매진하여 나온 것이 "95개조 논제"입니다.


그 후 비텐베르크가 종교개혁의 중심지가 되면서 비텐베르크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는 사실상 해체되고 주인이 없어진 이 건물을 루터가 결혼 선물로 받게 됩니다. 


루터는 이곳에서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과 생활했는데 유럽의 각국에서 루터에게 배우기 위해 찾아온 항상 학생들이 북적여서 그 아내가 양조장을 해서 루터의 연구와 일를 서포트 했다고 합니다.


이 문은 카트리나의 문인데 그 아내가 57세 생일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루터가 이문을 드나들며 지냈을것을 생각하니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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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하우스안에 있던 루터의 물건들과 초상화 입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루터가 죽을때 모습

2. 그가 평상시 입던 검소한 옷. 거칠고 보온이 잘 되지 않는 천입니다.

3. 루터하우스가 루터하우스에서 지냈을 모습

4. 면죄부와 연옥에서 천국으로 보내기 위한 돈을 넣던 통

5. 루터의 성경책

6. 루터가 수도자였을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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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를 따르는 사람이 계속 많아지자 로마카톨릭에서는 그를 회유, 협박하기 위해 파면칙령을 루터에게 보냈지만 루터는 이 참나무가 있는 자리에서 칙령을 태워버리고 카톨릭 교회와의 단절을 선언한 자리입니다. 사실 처음에 94개조를 써붙일때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로마 카톨릭 안에서 회개와 변화를 원했지만, 이제는 칙령을 태워버림으로써 완전한 단절을 선언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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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얀 후스가 자신의 주장을 해명하기 위해 출석했지만 이단 혐의로 체포되어 화형당한 콘스탄츠 공의회에 루터가 출석한 모습입니다. 얀후스도 프라하 대학의 총장이었고 루터도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였는데 그래서 말씀을 더욱 깊이 알수 있었고, 한번 찾은 진리를 목숨과도 바꿀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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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가 설교했던 Stadtkirche St. Marien 성마리아 시립교회 입니다. 종교개혁 기간 중 최초로 개신교 예배가 독일어로 진행된 곳 중 하나이며, 평신도에게 빵과 포도주가 모두 분배되는 양형 성찬식이 처음으로 시행된 장소입니다.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성에서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한 후에는 주로 이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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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루터는 죽기전 라틴어와 독일어가 섞인 말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Wir sind Bettler. Hoc est verum." (우리는 거지입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을수 있음을 말하는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내일은 니콜라이 교회와 루터가 공부했던 에르푸르트 대학에 갑니다. 


새누리와 우리의 삶 가운데 하시는 말씀을 잘 분별할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됨과 건강위해서 기도부탁드립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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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목사님의 댓글

이성계목사 작성일

생생한 정보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지혜자매님의 자세한 설명과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가 되는데, 현지에서는 더 큰 감동과 은혜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순례팀의 건강과 성령충만함을 위해서 계속 기도합니다. 승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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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nMoon님의 댓글

SeanMoon 작성일

할렐루야!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 속에 말씀의 생명력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거지입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울립니다.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다시 새로워지는 순례가 되길 기도합니다.
담임목사님과 모든 팀원분들 위에 주님의 평안과 강건함,
그리고 성령의 깊은 감동이 계속 함께하시길 축복합니다.

Soli Deo Gloria! 승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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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현님의 댓글

윤승현 작성일

생생한 일지 감사드려요! 함께 다니고 있는 느낌이에요!  건강함 가운데 하나님이 준비하신 은혜의 여정을 힘차게 달려나가시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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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c508f1님의 댓글

93c508f1 작성일

너무도 자세한 설명이 함께 있어 보는내내 유럽에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또, 봄 성지순례팀을 위한 배려(?)도 너무 아름다워요^^
계속해서 은혜 가운데 안전하게 잘 다녀오시기를 기도하고 있겠습니다. 승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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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은님의 댓글

이시은 작성일

이신칭의! 한번 찾은 진리는 목숨과도 바꿀수 없다 에 마음이 뜁니다. 자세한 설명해주셔서 루터와 멜랑히톤과 종교개혁 당시의 일들을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순례팀과 함께하며 유럽의 Revival 을 위해 기도합니다. 순례팀의 성령충만과 영육강건을 위해 기도합니다.  Wir sind Bettler. Hoc est verum. Sola Fide! 승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