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땅밟기 - 일곱째 날
페이지 정보

조회 1,734회 작성일 19-03-30 23:29
본문
이스라엘 땅밟기 - 일곱째 날 (2013. 4. 29. 월요일)
글, 사진: 이봉기
아침예배와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겼다.
첫 행선지는 '거라사'.
거라사를 향하는 중에 요단강을 건넌다.
강이라기엔 민망한 규모.
옛날에 비해서는 수량이 많이 줄어든 것이라고...
• 거라사 (Kursi)
마태복음 8:28-34, 마가복음 5:1-20에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쫓겨난 군대귀신이 들어간 이천마리의 돼지떼가 비탈을 내달려 갈릴리호수로 집단투신하는 사건이 나온다.
- 거라사는 현재의 어디?
인접한 요르단 땅에도 거라사의 지명을 가진 곳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갈릴리호수로 뛰어들기 위해서는 돼지가 날아가야 하므로 넌센스...
가장 유력한 곳으로는 현재의 Susita 지역이라 한다.
돼지를 금기시하는 유대인들과 달리 데가볼리(Deca-Police) 10개 도시들 중의 하나인 이곳에는 로마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기에 돼지의 수요가 있었고 무덤의 유적도 있어 무덤을 배회하는 귀신들린자의 출현에 있어 적절한 공간적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
더구나 아래로는 갈릴리호수로 향하는 비탈도 있다고...
Kursi 기념교회가 있는 마을은 이름도 그렇듯이 거라사 지역을 대표하는 마을이고 돼지를 키울만한 언덕이 있고 뛰어내려갈 비탈도 있지만 무덤이 없고 돼지의 수요도 없어 가능성은 Susita 보다 낮다 한다.
가버나움이 호수 건너편에 보이는 이곳에는 실제 돼지떼가 질주했을만한 비탈이 있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번 땅밟기 여행을 떠난 후 돼지고기를 입에 댄 기억이 없다.
귀가 후의 첫 메뉴는 삼겹살로 하리라...
• 요르단의 첫 시험은 출입국장에서...
우리 일행은 갈릴리호수의 추억을 뒤로 하고 요르단 입국을 위해 접경인 Bet Shean으로 향했다.
(분이 가라앉은 후 쓴 글...)
이스라엘측의 출입국사무소에서 출국심사를 마치고 요르단측의 출입국사무소로 가기 위해서는 셔틀버스를 타야한다.
우리 일행은 28명. .
한줄로 서서 담벼락 옆에 붙어 간신히 땡볕을 피하며 30분 이상을 기다리는데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이윽고 우리 뒷쪽으로 출국심사를 마친 중국관광객팀(중)과 히스패닉(히) 계통의 관광객팀이 순차적으로 나왔다.
중팀이 먼저 도착하여 우리 뒤로 서는 듯 하는데 히팀이 줄을 안서고 앞으로 돌진한다.
그런데, 여태 안나오던 버스가 저기서 갑자기 나오더니 우리 옆에 차를 세운다.
기사가 히팀의 가이드를 향해 손짓을 까딱 하니 순간 가장 늦게 도착한 히팀의 사람들이 도로로 내려와 우리 일행 옆을 지나 우르르 버스 앞문으로 돌진한다.
이어 앞에 있던 중팀도 질세라 차도로 몰려드니 인도에 줄서서 기다리던 우리 일행은 순식간에 가장 바깥쪽으로 밀려났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
아마겟돈의 모습이 이런 것이련가?
(난리통에 사진은 못 찍음...)
이런 몰상식한 상황이 너무나 화가 나고 이런 사태를 조장한 히스패닉 그룹과 중국인 일행이 너무나 혐오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이번 여행 중 우리의 회계로 섬기고 있는 손희순 자매님은 어느새 버스안에 올라타 있는 눈부신 순발력을 발휘한다.
기사는 일단 차문을 닫아버렸고 문 밖에서는 여전히 아비규환... 버스 밑의 짐칸에 일단 짐부터 밀어 넣었지만 문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서로 밀치고 소리지르고 있다. 이게 무슨 미친 상황이란 말인가?
이 무뢰배들에게 밀려나 어쩔줄 모르는 우리의 나이드신 자매님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평신도인 나는 내 분에 못 이겨 문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힘자랑의 대열에 동참하여 폭도(...)들을 밀어 내었다.
문 바로 앞을 탈환 후 내가 뭐하고 있나 자괴감에 빠져 있는데 어젯 밤 목사님께서 특별히 요르단 들어가는 전날이라 하여 그동안 없었던 대적기도를 하신 것이 떠올랐다.
특별한 영적무장을 주문하셨던 이유가 이것이었던가...
요르단에 들어가면 바로 영적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목사님의 예언의 첫 실현이 이것이란 말인가?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속에서 세상사람들과 다름없이 혈기로 충만한 이 평신도와 달리 우리의 목사님들은 뭘하고 계실까 궁금했다.
더구나 김태일 목사님은 미국의 현역군인.
만약 목사님들께서도 다름 없는 혈기로 이 상황을 대하고 계신다면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불안했다.
이것이야 말로 영적 위기상황.
각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와 능력이 환하게 드러날 것이리라.
만약 목사님의 화내고 혈기부리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앞으로는 웃으며 사랑을 권면하시는 목사님의 설교를 편히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두 목사님들께서는 의연하게 대처하고 계셨다.
분을 내지 않고 소리 지르지 않으며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애쓰고 계셨다.
김목사님은 앞문의 옆에 서서 군기가 실린 목소리로 "이 상태로는 아무도 탈 수 없습니다. 차례로 타면 충분히 탈 수 있으니 한명씩 타십시오."라고 사람들을 권면하였고 손목사님은 뒷쪽에 어지러이 방황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질서를 잡아 주셨다.
서로 말도 안통하는 3개국 출신의 단체들이 엉키는 상황이 갑자기 발생하자 어정어정 나타난 이스라엘 측의 경찰은 멍히 보고만 있는 중에 두 분의 한인목사님들은 두 민족의 폭도(?)들과 한 민족의 피해자들을 침착하게 다독였고 어느덧 모두들 안정되어 차례차례 한명씩 탑승하여 전원이 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역시 자랑스런 목사님들!
하지만 요르단측 출입국사무소로 가는 3분여 동안에도 나는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이 일을 일으킨 미친 중국인들과 미친 히스패닉들이 미워서 견딜 수 없었고, 이들 인종들에 대한 혐오가 북받쳤다.
이러한 가운데, 열방을 품고 선교를 꿈꾸고 만민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라고 목이 터지게 기도하던 내가 비상식적이기는 하지만 일상에서 발생할 개연성은 있는 이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분을 품고 증오의 마음이 틈타도록 방치해 버린 나의 약함도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가운데 차에 일착으로 올라타서 상황을 파악한 손희순자매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증언에 의해 사정이 파악되었다.
- 우리 일행: 줄 서 있다가 이방민족들에 의해 폭력에 가까운 새치기를 당한 순수한 피해자집단.
그러나, 상황을 정리한 선지자들은 이중에서 나옴.
- 중국인일행: 사건의 초중반동안 가해자로 오해받았으나 밝혀진 바는 이들도 피해자. 히스패닉팀보다 앞에 있었으나 이 히스패닉팀의 집단 새치기로 인해 덩달아 새치기의 광풍에 휩쓸리게 됨. 그러나, 한국인들이 가진 중국인에 대한 안좋은 선입견으로 인해 중국인팀은 초기에 우리에 의해 이 사태의 원흉으로 단숨에 지목됨.
하지만, 나중에 자초지종이 밝혀지고 우리팀과 아름다운 화해를 나눔.
- 중국인팀 가이드: 새치기를 선동한 원흉으로 오해받았으나 알고 보니 또다른 피해자였음.
사건 이후 요르단측 입국사무소에서 대기하고 있는 우리일행을 일부러 찾아와 물의에 동참함을 사과하고 선물까지 남기고 가서 우리를 감동케 함. 중국인에 대한 나쁜 편견을 일거에 해결한 훌륭한 민간외교사절.
- 히스패닉팀: 집단새치기사태의 시발집단. 가이드의 선동에 의해 앞의 두 팀을 제끼려 하다가 충돌사태를 일으킴.
- 히스패닉팀 가이드: 이 사건을 영적전쟁의 개념으로 이해할 때 사탄의 부하 역할을 한 인물.
셔틀버스 기사와 모종의 관계를 가지고 부정한 청탁을 하는 것으로 의심됨.
- 버스 기사: 이번 사건의 원흉. 자신과 내통한 히스패닉팀의 가이드와 작당하여 순서를 무시하고 먼저 태우려는 악행을 저지름. 우리 일행이 뻔히 줄을 서 있던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다가 히스패닉팀이 도착하자 버스를 몰고 나옴. 심지어 먼저 올라탄 손희순자매님이 차비를 계산하려 해도 딴청피우고 안 받다가 히스패닉팀의 차비만 받으려는 이상행동을 보임. 내리는 승객들을 보며 인사를 나누는 보편적인 버스기사들의 풍습과 달리, 자기의 지은 죄를 아는지 내리는 승객들의 눈을 피하고 외면하는 모습을 보임. 그 와중에도 손자매님이 회계임을 아는 이자는 우리의 하차 중에 팁을 요구하기까지 하는 후안무치의 작태를 보임. 자기 때문에 이 난리가 났는데 아는건지 모르는 건지.
악에 정도가 있다면 이자는 바알세불급이리라...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버스는 정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찰 만 하면 운전기사 마음대로 운행을 한단다.
이런 권한을 이용한 전횡이 가능한 이상한 시스템.
정말 말도 안되는 몰상식을 겪은 것인데 기준인 상식은 우리의 기준이고, 이들에게는 가능하면 새치기도 하는 것이 이들의 상식이라는 것이다.
말로는 수도 없이 다짐했던 이방민족을 섬기는 일은 막상 발 한쪽만 담가도 당장에 견디기 힘겨운 일들을 겪기 시작해야 하는 숙명의 고리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실감한다.
각국에서 섬기시는 선교사님들께서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견디고 있으며, 이에 하나님께서는 또 얼마나 귀한 은혜를 부어주셔서 그 싸움을 승리하도록 역사하시는지를 생각한다.
요르단 출입국사무소에서 입국심사를 마친 우리는 새로운 버스에 올라타서 에돔지방의 주요도시인 Petra를 향했다.
가는 길에 본 첫 구약의 장소는 길르앗 산지.
• 길르앗
길르앗은 요단 강 동편에 있는 고대 이스라엘의 영토(수 17:5) 전체를 일컫는다.
구약에 길르앗이 처음 나온 것은 야곱이야기이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가족을 이끌고 도망쳐 고향땅으로 돌아갈 때 뒤쫓아 온 라반과 만난 곳이다(창 31:21-24). 덥고 뜨겁고 물도 없는데 쫓고 쫓기느라 얼마나 피곤했을까...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도피한 곳도 길르앗이었고(삼하 17:24), 압살롬이 다윗의 군대와 대치하던 중에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죽임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삼하 18:9-15).
어찌하면 나무에 머리카락이 걸려서 매달릴 수 있을까 했는데 억세 보이는 요르단의 상수리나무를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 마하나임
계속되는 광야의 풍경은 다를 것도 없는데 안내해 주시는 집사님은 창밖에 보이는 언덕들이 마하나임으로 추정되는 곳이라 한다.
"어머! 우리 목장 이름이 마하나임인데!"
정해나 자매님이 반색을 한다.
마하나임은 외삼촌 라반을 떠난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 씨름하다가 환도뼈를 다친 곳이다(창세기 32장).
앞에는 무서운 형 에서가 기다리고 있고 뒤로는 외삼촌 라반이 쫓고 있는 곤궁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위하여 사자를 보내셨다.
야곱은 이땅에서 하나님께서 앞뒤로 하나님의 군대를 보내어 자신을 보호하 고 계심을 깨닫게 된다.
요르단의 입구에서부터 영적 위협을 겪었던 우리는 마하나임의 산지를 보며 앞으로 가는 길에서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음성을 듣는다.
• 암몬
이윽고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풍경이 창밖으로 지나간다.
출입국시 턱없이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오늘 잘 곳인 Petra에 제시간에 닿기 위해 일정은 조정되었고 버스는 쉼없이 달렸다.
창밖에는 이윽고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풍경이 지나간다.
소돔에서 나온 중에 후손을 갖겠다고 롯과 동침한 두 딸이 모압과 암몬을 낳는다.
이 곳이 바로 암몬의 땅.
GDP 30,000달러인 이스라엘에서 건너와 접한 GDP 5,000달러인 나라의 수도는 황량한 느낌이다.
• 여자들의 피로 유지되어 온 중동의 역사
이 곳 아랍사람들은 몇 분후 들통이 날 거짓말조차도 끝까지 몰고 간다 한다.
심지어 거짓이 들통나도 사과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잘못을 인정하면 명예살인도 가능한 문화이기 때문이라는데 여자가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그 여성을 죽임으로써 부족간의 분쟁을 해결했다 한다.
이 곳에서의 역사 상 부족간의 투쟁은 어느 한쪽의 씨가 마를 때까지 진행되므로 수많은 여성들의 희생으로써 역사가 이어져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한다.
야곱의 딸 디나를 범했던 세겜의 족속들이 야곱일가에 의해 절멸당한 사건은 중동의 문화에 비춰볼 때 이해가 가는 사건이다.
이 곳의 문화대로라면 디나를 희생함으로써 부족간의 유혈사태를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야곱일가는 이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던 것.
출입국사무소에서 겪었던 말도 안되는 사건의 경험 때문인지 이땅을 지배하고 있는 말도 안되는 문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예수님의 가르침만 바라보며 사는 우리들에게는 이들의 풍습과 문화가 너무나도 어이 없고 화가 나기까지 한다.
수많은 부조리들이 이들에게는 부조리가 아니다.
문화적 다양성으로 너그러이 이해하기에는 우리들의 타고난 성정으로도 이해하기가 힘겹다.
너무나도 악한 일들이 예사로이 벌어지는 문화는 선하게 이해해 주기가 무척이나 힘겹다.
이는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이들과 모르는 이들의 분명한 차이일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로 어느 덧 믿는 족속들 가운데 이루어진 신앙의 열매들을 돌아보며 이들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도하였다.
• 에돔
어느덧 에돔땅에 들어섰다.
창세기 36장에는 야곱의 형 에서로 시작된 에돔족속의 족보가 나온다.
이 곳에는 구리광산이 유명하고 출애굽시 있었던 불뱀과 놋뱀사건도 이곳에서 벌어진 일로 추정된다 한다.
에서의 후손이 살다 떠난 후에는 나바티안 왕국이 들어섰고 이들이 영화 '인디아나존스 3-최후의 성배'에 배경으로 나왔던 페트라유적을 남기게 된다.
세례요한의 목을 벤 헤롯안티파스의 왕비는 에돔왕국의 딸이었다고.
Wadi Musa의 Kings' Way Hotel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후 산책삼아 걸어간 '모세의 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위를 쳐서 물이 나도록 하신 바로 그 곳이란다.
이곳이라는 근거는 약하지만 근방 수백 Km에 이 곳 말고는 물이 나는 곳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이름을 붙여 놓았단다.
• 저녁예배
저녁예배는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를 부르며 시작되었다.
싸우는 교회로 악명 높았던 고린도교회를 권면하기 위한 바울의 서신인 고린도 전서 13장의 내용이다.
복음이라는 선물을 받고도 인가적 욕심으로 싸움을 그치지 않던 고린도교회에 바울은 사랑만이 해결책임을 일러준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가 밟고 있는 성지순례의 길도 선교도 헌금도 봉사도 그 어떤 아름답고 좋아 보이는 것들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선교를 꿈꾸며 이 땅을 밟기 위해 걷고 있던 당장의 오늘마저도 내 눈앞의 불편한 광경을 만든 이들에 대해 분노하고 미워하는 일을 겪었다.
지금도 그 운전기사를 떠올리면 나는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다.
오진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실 뿐.
이 무슬림의 땅 한가운데서 예배를 드리며 마음 놓고 주님을 찬양하고 있는 시간이 감사하는 가운에 밤이 깊었다.
- 이전글이스라엘 땅밟기 - 여덞째 날 19.03.30
- 다음글이스라엘 땅밟기 - 여섯째 날 19.03.30
댓글목록

신지연님의 댓글
신지연 작성일
이봉기 형제님은 분이 아직도 안풀리신 듯 한데 읽는 저희들은 왜 이렇게 웃긴지...
노여움과 분노가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기쁨으로 이미 바뀌었을 줄 믿고
일단 좀 양해를 구하고 웃겠습니다. 우하하하~~~~
희노애락이 있으니 인간 이겠죠,
우리가 사는 하루 24시간, 모든 삶의 장소에서 역사하시는 게 주님의 능력아닐까요?
이스라엘 땅 밟기 팀이 직면한 문제는 작게 보이고, 문제 뒤에 계시는 주님이 더 크게 보이는
이봉기 형제님의 글 속에서 분노와 절망의 산 너머로 동터오는 주님의 능력이 저희들의 심장을 뛰게 만듭니다.
그리고 손희순 자매님... 역쉬 돈통 맡기길 잘했어요.

jinny님의 댓글
jinny 작성일
저도 배꼽 빠지는줄 알았습니다.........ㅎ ㅎㅎ
하루가 정신없이 힘들고 피곤할텐데 또 하루일과를 재미있게 요점 정리해 주시고.....
정말 의지에 한국인 맞습니다...모두 돌아오시는날 까지 건강하게 뵙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웃겨서..푸하하......죄송..:)
Jineui Baur

오정아님의 댓글
오정아 작성일
이봉기 형제님의 글을 읽으니 이것이 바로 기행문의 묘미겠구나 했어요.
아부성 발언이지만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견주할? 만한 실력이십니다.
읽는사람으로 하여금 그곳에 가있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키시는 형제님은 욕심쟁이 우후훗!!!!
며칠 남지 않은 여정 모든 인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돌아오시길 기도드립니다.
향아자매님 삼겹살 반드시 준비하셔야 겠네요.

Jeeyoung Kim님의 댓글
Jeeyoung Kim 작성일
영적 싸움이란 게 전혀 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연출될 때가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 알지요.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영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소소한 이해관계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해석하고 바라보고 보듬을 수 있다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도 승주찬!을 외치며 기도로 요르단에 평화의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형제/자매님들. 여러분들의 발걸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백윤기님의 댓글
백윤기 작성일
어쩌면 이리도 소상히 저자의 마음을 고스란히 잘 전해주셔서 읽는 이로 같이 분개하고 또 웃게하시는지 이봉기 형제님이 누구신지 만난적은 없으나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자매님들께 들으니 부부의사로 스탠포드에 연수차 와 계시다고요.
여독으로 피곤하실터인데 여행기를 정성스레 또 생생한 사진까지 찍어서 올려주시니 참 고맙습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가 마치 동행하는 느낌이니 아무래도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띠로 한묶음 된 식구임에 맞습니다.
버스자리로 마찰이 있었던 다른 구릅의 분들도 아마 기독교인이 아니었나 생각할때,
조금 생각에 젖게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돌아오신 후 목장에서 의논할 수 있는 깊은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남은 기간도 몸건강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