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Mar 30.2019
요르단에서 마지막 날
이곳의 아침은 느긋합니다. 아침 10시가 되어도 상점문이 열리는 곳이 별로 없고, 11시가 다 되어도 그저 주인 마음인지 닫혀져 있는 상점들이 많이 보입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하나 둘씩 셔터 문이 올라 갑니다.
그에 비해 새누리 선교팀의 아침은 분주합니다.
전날 저녁에 정해진 아침 예배시간은 5시 반에서 6시반 정도인데,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울리는 사원으로 와서 알라를 예배하라는 기도소리로 인해
잠을 설치기도 하고, 때로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예배 받으실 오직 한 분,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도 만듭니다.
그러다 엉덩이를 하늘로 쳐든채 잠이 들어버리기라도 하면 그 아침은 불난 호떡집이 되는 겁니다.
왜냐면 아침 예배에 1분이라도 늦으면 않됩니다. 40명이 넘는 인원이 한명, 두명 1,2,분씩 늦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선교지라서 늦지 말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약속한 모든 에배의 시간에 늦으면 않되겠죠.
예배 시간에 칼 같은 새누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의 일지를 시작합니다.
현지에서 난민 센터를 운영하고 계신 여러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우리는 여러 팀으로 사역을 나누었고, 한 팀이 지금까지 우리의 요르단 일정을 함께 해 주셨던 송선생님이 섬기시는 센터에 갔습니다.
10시가 넘자 스트레칭 클래스를 참가하는 난민 자매님들이 하나 둘씩 오셨습니다.
그분들이 수줍고 조용하게 히잡을 쓰고 들어오실 때마다 우리들은 교제하기 위해 둘어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만난 아래 사진의 아쓰마라는 자매는 이제 27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시리아 내전때 공군 조종산인 남편을 잃고,
그 때 뱃속에 있던 둘째 아이를 낳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동생은 처형 당했고, 그 소식을 들으신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엄마도 건강이 좋지 못하십니다.
다행히 영어도 잘 하시고, 지금은 국제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중 이십니다.
스트레칭 클래스가 시작되자, 얼굴을 온통 두르고 있던 히잡과 긴드레스를 훌렁훌렁 벗어 던지시고, 이 분들이 다른 사람이 되셨습니다.
어찌나 신나고 행복해 하시는지, 아까 봤던 분들은 온데 간데 없고 환한 웃음과 신나는 율동으로 활기가 넘치셨습니다.
분명 스트레칭 클래스라고 했는데, 룸바가 딱!. 음악도 추억의 댄스음악들로 들썩들썩~~ 덕분에 새누리 자매들도 선교와서 찌뿌둥한 몸을 풀수 있었습니다.
형제님들은 커텐 너머로 궁금해 하시기만 할뿐, 커텐 이쪽의 공간은 오직 자매님들만의 공간입니다.
히잡 하나 잠깐 벗었을 뿐인데 이렇게 행복해 하시니, 우리 주 에수님을 믿고 자유함을 얻으면 얼마나 좋으실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일찍 시작해서 가장 늦게 끝난 어린이 유스 사역입니다.
누가 올지, 얼마나 많이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것을 주깨 맡기고 그저 같이 있으면서 사랑을 나누고 교제하는 것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과 유스들이 오면서 하루종일 센터는 북적거렸고 팀원들은 신나게 시작해서 녹초가 될 때까지 같이 하루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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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애 보이는 두 유스 형제들은 이제 송선생님이 부재중에도 센터의 태권도 수업을 맡길정도로 든든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빨간 바지를 입은 아론형제는 18인데 송선생님과 아주 가깝게 지내는 난민 가족의 10남매중 막내입니다.
클래스를 마친 자매님들과의 몸의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준비해 간 마스크 팩도 붙여 드리고, 전신 마사지도 해드렸는데, 60이 넘으신 송혜경 자매님이 어린 난민 자매들을 안마 해주시며 섬기시고,
팔과 어깨가 아픈 나연 자매도 통증을 마다 않고 안마로 섬기신 것이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런데 난민 자매님들중 한분이 누워서 하시는 말씀이, 남편이 식구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데, 자기가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답니다. 호사는 무슨.... 겪으신 모진 고통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호사도 아니고, 또 우리 주님의 자녀가 되시기만 하면 생명보다 더 풍성한 것으로 삶을 채우실수 있는데 하는 더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음 만났던 아쓰마 자매님 댁을 방문한 여성사역팀. 아프신 어머니도 만나서 위로와 기도를 해드리고 좋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은 이라크 목사님이 섬기는 이라크 난민교회를 방문해 섬김 팀입니다.
신성식 형제님이 간증을 통해 말씀도 해주시고, 성경구절을 통해 복음도 전해주시고, 이집트 목사님이 인도해주시는 예배도 같이 드리고,
방과후에 온 어린이들과 어린이 사역도하고, 가정 방문 심방도 한 꽉 찬 하루였습니다.
또 다른 팀도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같이 크래프트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너무나 근사한 점심을 대접 받고, 다섯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사역을 향해 출발하며!!
두고 온 고향 시리아의 나무의 풍경이 그립다고 뒷 뜰을 멋있게 꾸며 놓으셨데요.
다음은 난민 가정을 방문해서 집을 예쁘게 페인트 해준 팀입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난민 가정에서 대접해 준 점심식사, 많이 주셨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다 먹으니, 계속 주시고 또 주셔서 마다하지 못하고 드시느라 힘드셨데요.
다른 한팀은 송선생님과 함께 가정 방문을 나갔는데, 놀라운 가정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시리아 난민으로 무슬림 가정인데요, 아들셋을 둔 가정입니다.
난민으로 요르단으로 오게 된후, 큰 아들의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나는 길이라고 말씀하시고 나를 믿으라고 하셨데요.
그 아들은 그날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가족들은 당연히도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었고, 누구보다 그를 너무 사랑하는 엄마가 가장 많은 핍박과 박해를 했답니다. 실제로 머리카락을 틀어쥐고 때리기도 하고요, 집안에서 완전히 큰 아들을 분리 시키고 모진 핍박을 했다고 하네요.
몇 달후에 그 어머니의 꿈에 예수님이 또 나타나셔서 그 어머니도 그날 아침부터 바로 믿기 시작했고, 남편에게 '할렐루야' 라고 해놓고,
내가 말하는 이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어머니 뿐 아니라, 아버지도, 작은 아들에게도 모두 꿈과 비젼으로 나타나셔서 모두 크리스쳔이 된 후에 마지막으로 남은 막내 아들은
당시 12살이었는데, 스스로 그 때 일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었는데, 자기가 모든 가족을 죽이고 알라에게 충성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그도 역시 주님이 꿈에 나타나시어 지금은 이 형제들이 모두 아랍권의 선교사가 되는것이 꿈입니다.
이런 스토리 덕분에 많은 교회가 찾아왔고, 간증을 듣고 기도를 해주고 사진을 찍고 가신 후에 다시는 찾아 오지도, 어떤 도움을 주지도 않는 일이 반복되자 나가던 교회도 그만 두시고 그 상처로 인해 지금은 송선생님과 가정 예배만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와의 사진 찰영도 거부하시다가, 우리와 기도제목을 나누고 눈물로 뜨겁게 기도한 후에는 인터넷에 올리지 않는 다는 조건으로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같이 찍어주셨어요. 교회가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계속 기도해야겠지요.
센터로 돌아와 태권도조교인 아론의 엄마가 준비해준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반가운 새누리의 식구들을 만났습니다.
2년전에 이스라엘로 가신 희애 쌤과 제나 쌤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암만에 계시데오.
같이 저녁식사를 하고 팀들과 만나서 인사를 하시고, 팀들이 쌤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해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만난다는 희애 쌤의 마지막 인사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이스라엘 국경을 넘습니다.
요르단이 자체적으로 데이라잇세이빙을 시작하느라 한시간의 잠을 양보해야하지만,
거룩한 땅으로 들어가는 날인지라 많이 설렙니다.
내일의 일정 중 요단강에서의 침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그리운 새누리, 굿나잇입니다.
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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