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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맨9기 화요일 저녁반] - 제자제곱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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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한주
조회 31회 작성일 25-11-18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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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챈의 제자제곱을 읽으며 다음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예수님을 닮지 않은 채 그리스도의 이름만 빌려 크리스천처럼 보이며 살아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초등학생 때부터 성가대와 성경캠프에 참여하며 교회 활동을 꾸준히 했지만, 실제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같은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인정하게 되었다.


특히 회개에 대한 부분이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그동안 회개를 하나님이 때가 되면 마음을 주시는 ‘어떤 순간’에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언젠가 상황을 주시면 그때 회개하겠다는 수동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책은 회개란 우리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있는 것이 남아 있다고 믿는 데서 돌이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출애굽기에서 문지방에 양의 피를 바르는 것도 결국 선택이었듯, 내 그릇된 생각과 행동을 말씀으로 비추어 주실 때 내가 믿음의 행위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인거 같다.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깨우쳐 주실 때 그 길로 순종하며 돌아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제자 양육에 대한 메시지는 무겁다. 제자 양육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명이고 존재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목자로서 목원들에게 말씀을 나누는 일도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 남들의 시선, 잘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마음을 가로막는다. 그런데 책은 제자 양육의 본질이 ‘가르침’이 아니라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오히려 마음을 덜 부담스럽게 했다. 사랑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 때 흘러나오는 것이기에 이 또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외모보다 중심을 보신다”는 말은 늘 좋아한다. 이번에 묵상하면서 내가 왜 이 구절을 좋아하는지 생각 해본다. ‘중심을 보신다’보다 ‘외모보다’라는 표현이 마음에 더 든다. 세상의 외모, 돈, 명예, 인정 같은 것들은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이 없고 잘하지도 하지도 못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 중심이 곧 하나님 중심이라는 뜻은 아니다. 내 가치관이 하나님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고 착각할 때도 있지만, 결국 나의 중심은 하나님의 중심과는 다르다. 그래서 내 중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그때 주어지는 진짜 순종과 기쁨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고 싶다.


사역에 대한 부분도 내 마음을 건드렸다. 책은 사역의 첫걸음은 “그냥 그들을 도우라”는 단순한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자꾸 망설인다. 오지랖으로 보이지 않을까, 상대가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 혹은 나라는 사람 자체를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발을 잡는다. 그럼에도 책은 무관심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완벽히 준비되어 있지 않아도, 바로 지금 다가가 돕는 것이 사역이라고 한다.


성경 읽는 방식에 대한 도전도 있었다. 그동안 성경을 읽으며 새로운 깨달음이나 나의 적용 중심으로 읽어왔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주제인 책이고, 하나님이 우리와 소통하기 위해 주신 책이라는 말이 마음에 크게 들어왔다. 솔직히 하나님과의 소통은 아직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주셨다”고 나눌 때마다, 그 내용보다 하나님과 어떻게 소통했는지가 더 궁금했다. 생각으로 마음에 말씀을 주시는지, 찬양 중에 감동을 주시는지, 기도나 잠자는 동안 실제 음성으로 들려주시는지, 방언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과 더 긴밀하게 소통되는지… 아직도 여러 궁금함들이 있지만,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다가오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나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때 확신을 갖기를 바란다.


인간은 죄로 인해 행위뿐 아니라 마음에서도 부패했고, 그냥 두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존재라는 말에도 깊이 공감한다. 실제로 베이지역에 처음 왔을 때, 자녀가 없었던 시절에는 예배와 멀어지고 교회도 드문드문 나갔다. 그러나 자녀가 생기면서 교회에 다시 발을 들였고,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듣고, 목장에 참여하고, 작은 사역을 섬기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천천히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다. 관계의 회복은 한순간의 큰 감동이 아니라 작은 순종들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묵상하게 된다.


속죄에 대한 설명도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속죄는 잘못된 것을 보상하고 평화를 회복하며, 하나님과 다시 하나 되는 것이라고 한다.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왜 그들이 그렇게 쉽게 유혹에 넘어갔는지, 왜 그 일로 인해 우리가 모두 죄인이 되었는지, 왜 에덴에서 쫓겨나야만 했는지 이해되지 않았고, 심지어 그때로 돌아가 뱀을 나무에 묶어두어 유혹의사건이 없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속죄를 통해 회복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그 관계는 에덴에서 하나님과 자유롭게 소통하던 그 상태와 다르지 않다를 깨달았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제자제곱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그리고 내 중심이 바로 서야 하나님의 사역도 제자 양육도 가능함을 알려준다. 아직도 그 말들이 문자적으로 느껴지지만, 포이멘의 훈련에 순종함으로서 더욱 알아가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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