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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9기 화요일 저녁반 - 끈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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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지수
조회 56회 작성일 25-12-2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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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김 – 입을 크게 벌리는 훈련



    끈질김 (Relentless)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지칠 줄 모르는,” “끊임없는,” 또는 “멈추지 않는” 이라는 뜻이 나왔다. 그리고 반대말로는 “그만두는” (ceasing), 또는 “융통성” (flexible) 이라는 뜻이 나왔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끈질기지 못했는가? 돌아보니 내가 스스로 충분하다고 느꼈거나 “적당히” 타협했을 때 나는 끈질김을 그만두었다. 융통성이라는 듣기 좋은 핑계 아래 나는 끈질김은 내려놓았다. 나 스스로에게 “포기”한 것이 아니라 “완료”했다는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며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했다.


    존 비비어 목사님은 우리에게 단호하게 이야기하신다. 우리는 끈질겨야 한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계속 달려나가 완주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대해 끈질겨야 하는 것인가? 비비어 목사님은 책의 시작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하신다. 바로 은혜. 능력.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 (능력)의 잠재력을 완전히 성취해야 한다고 말하신다. 우리는 다스리는 자로 하나님께 부름 받았고, (우리의 인간적인 노력이나 성취가 아니라) 값없이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이제 곧 우리의 능력이다 .은혜가 곧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여태껏 나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그 분의 자녀이자 종인 나의 관계에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내가 자녀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상속받은 은혜, 상속받은 권위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내가 사용할 생각은 못한 것이다. 물론 그 절대적은 능력과 권능은 내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능력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이루는 것은 사도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이제서야 되새겼다.


    매일 수십명의 암 환자들을 보고 주기적으로 말기암 환자분들을 떠나 보내야 하는 나는 늘 인간의 제한적인 능력과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과정의 경계에 있다. 몇년 전 새누리교회를 방문했던 채영광 교수님은 나와 같은 종양내과 의사이자 훨씬 더 많은 숫자의 환자분들을 떠나 보내오신 베테랑이시다. 누구보다 많은 임상경험이 있고 통계를 잘 알고 있을 채 교수님은 의료 세미나 때 자신이 만나는 모든 환자들의 완치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고백하셨다. 설사 그 환자가 온몸에 암이 퍼진 말기 환자라고 할지라도. 말하는 것은 쉽다. “하나님이 하시려면 하시겠지.”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생존률”이라는 통계가 자리잡고 있고 기대는 낮다. 다만 채영광 교수님은 진심으로 완치를 놓고 기도하시는 것 같아 보였다. 어떻게 가능할까? 답을 찾던 나에게 하나님이 말씀으로 보여주셨다. “달리다 굼” (Talitha Kum).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아람어의 표현으로 “소녀야 일어나라” 라는 뜻이다. 그리고 죽은 소녀는 일어난다. 생각해보면 완치라는 것이 별것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을 지으시는 것이 어려울까 아니면 병을 고치는 것이 더 어려울까? 답은 간단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전까지 환자들의 치유를 내 안에서 제한했을까?


    돌이켜보면 모자랐던 것은 은혜가 아니라 믿음이었다. 은혜 (능력)은 이미 넘치게, 넉넉히 이기게 주어졌지만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재작년부터 나도 환자의 완치를 위해 기도해왔다. 아무리 깊은 병이라 할지라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처럼 데려가시겠지만 하나님의 뜻이시면 완치해 주세요.” 얼핏 들으면 겸손해 보이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기도는 내 몫이 아니다. 하나님의 몫이다. 나의 몫은 온전한 치유를 기도하는 것. 그것이 전부이다. 다만 끈질겨야 한다. 기도는 겸손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존 비비어 목사님의 말에 따르면 내가 겸손을 오해하고 있었다. “겸손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으로 참 겸손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선물인 능력 안에서 담대하고 끈질기게 사는 것.” 나의 겸손의 기도는 참 겸손이 아니라 핑계이자 도망갈 구멍이었다. “끈질김”을 읽으며, 나는 내 기도가 더욱 적극적이고 담대해야 함을 배웠다.


    나는 여태껏 충분히 입을 벌리지 못했다. 충분히 큰 그릇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은혜 (능력)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는 타협해 왔고, 도망쳐 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조금 구했던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도전하기로 했다. 진리 안에 끈질기게 거하며 끈질기게 하나님께 매달리기로. 풍요로운 삶에 젖어서 안주하지 않기로. 내가 보았을 때 가능할 일에 대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계산”이다. 진정한 믿음은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루기 위해 멈추지 않고 지치지 않고 기도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결국 믿어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 히브리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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