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로스 토요반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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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회 작성일 25-12-3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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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스 토요반 시수연 설교
입에서 김이 나오는 추운 겨울날, 요새는 특히 미국에서는 걸어 다닐일이 별로 없지만, 가끔 백화점들 앞에 있으면 종을 치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헌금을 모으는 구세군들을 볼 수 있다. 구세군은 1865에 영국에 있던 감리교 목사님 William Booth 와 그의 부인 Catherine Booth로 부터 처음 만들어 졌다. 1891에 우리가 지금 흔히 보는 연말 자선냄비 캠페인이 아이러니 하게도 그리스도인이 그리 없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구세군은 처음 산업혁명으로 인한 빈곤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진 기독교 자선 , 선교 단체였다. 그들은 복지와 구호 활동을 통해 약자들을 지원하고 복음전파에 힘쓴다고 한다. 그들은 왜 그렇게 복지 활동에 힘썼던 것일까?
마태복음 9장 35-38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5절에서 보았듯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통해 많은 선교사님들이 지금까지도 온 열방으로 흩어져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여러 방법을 통하여 일하신다. 한 예로, 캄보디아에 계신 황현주, 황순현 선교사님이 계신 사역지도 이 세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그들은 학교를 세우시며 가르치셨고, 어른이 되신 나이에 한의학을 배워 한의학으로 치유에도 앞장지시며 우리 교회가 매년 의료선교로 나갈 수 있게 여러 방면으로 서포트를 해주시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래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신다. 노방전도를 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보여준 캄보디아를 보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안에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그 마음에서이다. 36절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라고 하셨다. 불쌍히 여기시니는 영어로는 compassion이라고 번역 되어 있고, 헬라어에서는 “스플랑크니조마이= 몸속 장기, 깊은 내장까지 느껴지는 가련함, 엘레오스= 긍휼, 자비, 인자 등으로 번형되며, 오이크티모스=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슬픔과 동정을 느끼는 내적인 감정으로, 애정을 느끼는 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연민을 의미한다.”
이같이 남을 대하지만, 자기의 장기의 내장까지 느껴지는 가련함, 남의 고통까지 함께 할수 있는 그런 마음 가짐으로 예수님은 무리를 쳐다보셨다. 그랬기에,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도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려고 하셨던 것이 분명하다.
이 세상에는 아주 여러가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온전한 마음으로, 대할수 있는 마음이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의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다. 37-38절에 성경도 말씀하신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안에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우리는 자청해서 일꾼으로 나서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우리 안에 있는 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신, “주안에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주께서 합당히 쓰실 수 있게, 우리가 그것을 위하여 회개하며 성령의 힘을 빌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을, 믿지 않는 가족들, 혹은 상처받아 사랑으로 온전히 볼 수 없는 그 사람들 조차도 내장까지 느껴질 수 있는 가련함을, 자비로운 마음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도록 기도해야한다.
한 때, 샌프란시스코에 연말 자선냄비 캠페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이젠 이 샌프란시스코 땅에 그 결실이 있기를 소망한다. 실질적인 도움도 필요하지만, 이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그 말씀이 없이는 우리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기 떄문이다. 이 많은 목자 없는 양들이 많은 이 샌프란시스코 땅에 우리를 불러 주심은 언젠가 우리를 일꾼으로 보내주고 싶으셔서 이지 않을까? 그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결단하며 2026년을 준비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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