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9일: 나는 지금 여기에서 오늘 행복합니까? > 안디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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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칼럼

2020년 7월 19일: 나는 지금 여기에서 오늘 행복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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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필라안디옥교회
댓글 0건 조회 15,569회 작성일 21-06-1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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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렸을 때 들었던 1908년 벨기에의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동화극 ‘파랑새’를 기억합
니다. 남매가 꿈속에서 ‘파랑새’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집안의 새장에 ‘파
랑새’가 있더라는 동화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가장 가까운데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
게 들어왔습니다. 그런데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지금도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다 행복하기를 원하는
데도 행복은커녕 슬픔과 절망 속에 패배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영국의 청교도였던 토마스 맨튼 (1620-1677)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바라면서도 그것을 가져다줄 수단을 잘못 선택한다... 행복과 반대되는 수단을 택한다.’ (랜디 알콘의 ‘행
복’ p.28).
비틀즈의 존 레논은 행복하기 위하여 마약을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전도자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행복하기를 원한다. 기독교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설명해 달라. 나는 지금의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
찰스 다윈은 30대에 문학과 음악과 미술의 ‘감성 세계’에서 행복을 맛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후
에 나이가 들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대할 때 너무 따분하고 구역질이 난다고 했습니다. 한때 나를 행
복하게 하였던 것들이 지금은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정신과 의사 폴 마이어 박사는 수많은 백만장자와 상담하면서 그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절
대로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 가졌지만 딱 하나 없던 것,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이 없었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내가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주어지는 ‘상태’입니다. 누가 행복을 줍니까?
마약도, 돈도 명예도, 심지어 감성적인 나의 오감도 아닙니다. 오감이 주는 행복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블레즈 파스칼은 행복을 주시는 분은 바로 행복 그 상태,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 자신이 ‘빈자리,’ 공허한 마음을 1854년 11월 23일에 빛으로 그에게 임하신 주님을 모신 후로 그는 기
쁨과 행복으로 살았습니다. 감옥에 있던 바울도 주님이 주시는 행복으로 기뻐하며 감옥 밖에 살던 성도
들에게 오직 예수님으로 기뻐하고 행복하라고 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은 400년 전에 미국 땅에 ‘행복’을 찾아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주님이 주신 ‘행
복’을 유럽에서는 살지 못하니 신대륙에서 마음껏 살기 위하여 왔습니다. 나의 마음의 ‘빈자리’에는 지
금 누가 앉아계십니까?
- 호성기 담임목사 Rev. 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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