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사이플 15기 목요일 저녁반- 양준모 포이맨님] 케노시스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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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eter Park
조회 60회 작성일 25-12-0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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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준 목사님의 ”케노시스: 자기 비움“을 읽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케노시스? 자기 비움? 그게 무슨 뜻일까? 하는 질문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며 ‘기독교 가치관의 정수가 바로 이 단어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깊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안에 이기심이 많고 꽤 자기중심적이라고 스스로 자주 느낍니다. 언제나 그 부분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가족 관계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운전하는 상황에서도 조금이라도 상대에게 불이익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금세 좋지 않은 마음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
“저 사람이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저렇게 운전하지?”
“도대체 왜 저럴까?”
이런 식으로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마음이 자주 올라왔고, 어릴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 내 주변 사람들도 나를 위해 희생하고 있었구나. 나도 운전할 때 실수하는데, 그럴 때 나를 이해하고 넘어가 준 사람들도 많았겠구나.
점점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있다’는 잘못된 마음에서 벗어나, ‘우리는 모두 같은 위치에서 서로에게 실수도 하고 선의도 베푸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케노시스와 기독교는 여기서 더 나아가라 말합니다. 자아를 부인하고, 다른 이들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기라. 가장 높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제 안에 있는 이기적 성향과는 정반대의 가치이기에, 저는 늘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과연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동안 나름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며 불편한 상황도 마주하고, 반대로 껄끄러운 관계를 회피한 적도 많았습니다.
“저 사람과 나는 안 맞아.”
“저 사람은 좀 불편해.”
이런 핑계를 대며 피했던 순간들이 꽤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예수님의 희생과 가장 닮은 행동은 선교가 아닐까? 특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다른 이들의 영혼을 위해 헌신하는 삶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예수다운’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스스로 “나는 저렇게는 못할 것 같다”고 느껴 더 큰 감동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케노시스!
자아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워진 삶. 그 믿음으로 구원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에 가능한 삶. 세상의 시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선교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꼭 해외 선교가 아니어도,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 역시 케노시스를 살아내고 있기에 다른 이들을 위해 기쁨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일 겁니다. 저도 이제 그 의미를 알았기에, 케노시스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더 노력하고 싶습니다.
말씀과 기도, 그리고 공동체 가운데서. 말씀으로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붙들고 기도하며 씨름하고, 공동체라는 현실 속에서 연단되고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더욱 성숙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케노시스? 자기 비움? 그게 무슨 뜻일까? 하는 질문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며 ‘기독교 가치관의 정수가 바로 이 단어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깊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안에 이기심이 많고 꽤 자기중심적이라고 스스로 자주 느낍니다. 언제나 그 부분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가족 관계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 운전하는 상황에서도 조금이라도 상대에게 불이익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금세 좋지 않은 마음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
“저 사람이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저렇게 운전하지?”
“도대체 왜 저럴까?”
이런 식으로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마음이 자주 올라왔고, 어릴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 내 주변 사람들도 나를 위해 희생하고 있었구나. 나도 운전할 때 실수하는데, 그럴 때 나를 이해하고 넘어가 준 사람들도 많았겠구나.
점점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있다’는 잘못된 마음에서 벗어나, ‘우리는 모두 같은 위치에서 서로에게 실수도 하고 선의도 베푸는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케노시스와 기독교는 여기서 더 나아가라 말합니다. 자아를 부인하고, 다른 이들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기라. 가장 높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제 안에 있는 이기적 성향과는 정반대의 가치이기에, 저는 늘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과연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동안 나름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며 불편한 상황도 마주하고, 반대로 껄끄러운 관계를 회피한 적도 많았습니다.
“저 사람과 나는 안 맞아.”
“저 사람은 좀 불편해.”
이런 핑계를 대며 피했던 순간들이 꽤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예수님의 희생과 가장 닮은 행동은 선교가 아닐까? 특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다른 이들의 영혼을 위해 헌신하는 삶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예수다운’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스스로 “나는 저렇게는 못할 것 같다”고 느껴 더 큰 감동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케노시스!
자아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워진 삶. 그 믿음으로 구원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에 가능한 삶. 세상의 시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선교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꼭 해외 선교가 아니어도,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 역시 케노시스를 살아내고 있기에 다른 이들을 위해 기쁨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일 겁니다. 저도 이제 그 의미를 알았기에, 케노시스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더 노력하고 싶습니다.
말씀과 기도, 그리고 공동체 가운데서. 말씀으로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붙들고 기도하며 씨름하고, 공동체라는 현실 속에서 연단되고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더욱 성숙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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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님의 댓글
양준모 작성일형제님의 믿음과 영적 성장를 위해 기도합니다.